저성장 시대와 택배 노동의 선택 증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즉각적인 소득을 만들 수 있는 직종에 대한 선호는 자연스럽게 증가해 왔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제조·서비스 업종의 고용 흡수력이 떨어지면서 택배 노동은 중장년층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에게 마지막 대안적 생계수단으로 부상했다. 표면적으로는 차량만 구입하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개인에게 초기 투자 비용과 상당한 위험이 전가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진입 장벽은 낮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차량 가격, 보험료, 장비 비용, 유지비 등 고정 비용이 높아,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이 크다.
특히 택배 산업의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차량 구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차량 판매업자들은 구역 배정을 미끼로 한 끼워팔기를 빈번하게 시도하며, 신입 노동자들은 정보 부족으로 인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많다. 일정 구역에서 일하고 싶다면 특정 차량을 먼저 구매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되기도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사기성 판매나 과도한 할부 계약이 발생한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자영업자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역과 시스템에 종속된 노동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실제 차량을 구매하면서 하이탑, 정탑, 저탑으로 나뉘게 되는데 차량의 종류에 따라 자신의 섹터가 바뀌게 된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지하 출입 높이가 2.3m 혹은 2.1m이므로 이때는 저탑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아파트를 위주로 배송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서 차량의 선택이 달라지게 된다.
만약 택배가 아닌 가게에 식자재 납품 등 많은 짐이 들어가는 일을 하게 된다면 하이탑(2.7m)이 더 유리하다. 그렇다고 하이탑이 항상 불리한 것은 아니다. 지상으로 출입이 가능한 아파트로 배송을 한다면 저탑이든 하이탑이든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번호판도 문제가 된다. 번호판은 영업용 번호판과 일반 번호판으로 나뉘게 되는데 아바사자+배 번호판은 영업이 가능한 차로 볼 수 있고 일반 흰색 번호판은 일을 할 수 없는 차로 나뉠 수 있다. (ex. 서울 12아 1234, 인천90배1234, 라는 식으로 번호판이 구성되어 있다.)
아바사자 번호판은 구입을 해야 하며 보통 가격은 2000만원 전후로 가격에 변동이 있으며, 배번호판은 발급 가능 택배사에 신청해 발급받을 수 있다. 배번호판은 택’배’를 하기 위해 도입된 번호판으로 무료로 받을 수 있지만, 택배차에 대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경유차는 배 번호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번호판을 받기 위해서는 LPG, 전기차 만 받을 수 있다.
택배 노동의 숨겨진 구조적 위험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
택배 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법적 보호체계를 거의 받지 못한다. (택배사업자가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송을 통해 인정받아야 한다. 근로법의 사각지대에 있으며, 그 이유는 차량을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선 개인사업자로 봐야 하는지, 근로자로 봐야하는지 판단해줘야 한다.)
산재 적용이 제한적이고, 사고·고장·유류비·수리비와 같은 모든 비용은 노동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기업은 물량 증가에 따른 이익을 가져가지만, 물량 변동과 위험 요인은 노동자가 감당한다.
특히 신입 노동자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구역 선택의 부재다. 대부분의 ‘좋은’ 구역은 기존 기사들에게 배정되어 있으며, 신규 노동자는 물량이 적거나 비효율적 동선의 구역을 배정받기 때문에 수익이 기대보다 크게 낮아진다.
실제 업무 역시 단순 배송이 아니다. 분류 작업, 상하차, 주소지, 동선 설계, 고객 응대, 각종 잡무처리까지 요구된다. 현장 업무를 숙달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생각에 최소 6개월정도 필요한데, 보통 이 기간안에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저성장 시대에 은퇴 후 마지막 직업으로 택배를 선택한 중장년층에게 이 노동 강도는 더욱 부담이 된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배송지까지 찾아가는 것도 문제이고, 배송 시간의 압박, 날씨문제, 건강문제 등 반복 작업, 작업 시에 발생하는 무릎·허리 등의 부상은 택배에 뛰어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이다.
새벽배송과 고강도 노동의 심화
새벽배송은 일반 배송보다 노동 강도가 더 높은 형태이긴 하지만, 장단점이 있는 노동형태이다.
먼저 건강적 측면에선 생체 리듬 붕괴와 수면 부족이 누적되어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심각하게 만든다. 특히나 밤에 일하고 낮에 일해야 하는 것은 바이오 리듬을 심각하게 깨지게 만들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적응을 못하는 기사들도 많이 있다. 거기에 배송지까지 이동 후 내리고 짐을 다시 빼서 배송하는 과정에서 차에서 내리고 오르는 일이 반복되는데 여기서 무릎 부상을 크게 일으킨다. 무릎에 그렇게 큰 무리가 되겠나 싶겠지만, 문제는 반복이다. 반복되면 부상은 누적된다.
거기에 배송지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계단을 타야 하는데 이 또한 무릎에 굉장히 안좋다.
배달 시간은 고정되어 있으며 늦으면 고객 불만과 패널티가 발생하기 때문에, 시간 압박 속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굉장히 예민하게 되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며 급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날씨에 따라 노동강도가 바뀐다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하는데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비와 눈이다.
비가 쏟아지는 여름철 장마, 태풍기간에는 온몸이 젖고 더워 힘들고, 계속 차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다면 시원하겠지만, 계속 차에서 내렸다 타야 하기 때문에 젖은 상태로 최소 4시간은 일을 해야 한다. 거기에 모기도 일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겨울철은 더운 것과 별개로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때는 괴롭다. 여름엔 짜증이 많이 난다면 겨울엔 괴롭게 일한다는 차이가 있다. 거기에 눈까지 많이 내리게 된다면 일을 아예 못하게 된다. 눈을 치우고 가면 될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눈은 새벽5~6시정도부터 치우기 때문에 일을 본격적으로 하는 2시정도엔 눈이 쌓여 일을 할 수 없다. 만약 자신의 섹터에 언덕이 많은 지역이라면 아예 올라갈 수도 없기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된다.
수입 구조 역시 현실과 괴리가 크다. 온라인에서 홍보되는 ‘월 500만 원 수익’ 같은 내용은 실질 순이익을 반영하지 않는다. 차량 감가상각, 유류비, 보험료, 정비비, 각종 소모품 비용을 차감하면 실수익은 크게 떨어지며 개인사업자로 들어가기 때문에 부가세 포함 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물량감소, 배송 단가의 차이는 고수익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건강 리스크와 구조적 소진 문제
택배 노동은 기본적으로 주6일 근무가 기본이다. 거기에 더 쉬고 싶다면 회사를 잘 들어가야 하지만 주 5일 근무는 찾기 힘들다. 휴식 시간이 적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누적되며 하루 수십 개의 물건을 반복적으로 들고 옮기는 과정에서 허리·무릎·어깨의 손상은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배송 지연을 막기 위해 계단을 뛰어오르거나 비좁은 골목에서 차량을 반복 이동시키는 과정도 노동 강도를 높인다. 건강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치료와 휴식은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며, 그 기간 동안의 소득은 사라진다.
또한 택배 노동자들은 과도한 물량 압박 속에서 스스로를 “일을 멈출 수 없는 상태”로 밀어 넣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이유로 쉬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이 일상의 기본이 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심리적 번아웃과 우울을 유발한다. 저성장 시대에 택배가 ‘마지막 직업’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결국 노동자 개인에게 심각한 소진과 건강 악화를 장기적으로 남기는 구조적 문제로 귀결된다.
택배로 뛰어들기전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택배는 단순히 생각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꾸준히 일을 과연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강, 차량, 날씨 문제는 의욕과 다르게 일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감안하고 일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과연 자신이 만족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한다.